울산 동구 주민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박 기자님, 뭔가 이상한데요? 현대중공업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답니다."

그는 반신반의 하는 말투로 제보전화를 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현역 의원이며 재선을 노리는 안효대 의원의 선거 공약을 적은 명함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첫번째로 명기되어 있었다.

4.11 총선에서 울산 동구는 노옥희라는 강력한 경쟁 후보를 당내 경선에서 이기고 본선에 오른 진보통합당 이은주 의원과, 정몽준 의원의 측근이자 현대중공업 간부 출신이 현역 안효대 의원의 빅매치가 예고되어 있다. 여기다 과거 한나라당으로 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덕웅 예비후보가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은주, 김덕웅 예비후보의 주 총선전략이 비정규직 철폐이며, 똑같이 안효대 의원측을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안효대 의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의 도시 울산 동구 총선의 최대 이슈가 됐다. 하지만 후보 각각의 문제 해결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주민들은 과연 어느 후보의 설명에 공감할 것인가. 이번 선거의 키포인트다.

이웃 현대차 비정규직 판결에 큰 영향받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인 동구는 현대중공업이라는 세계최대 조선사가 지역의 근간을 이룬다. 고용이나 소비로 봐서 지역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다. 

울산 동구의 현안 쟁점은 현대중공업에서 점점 늘어난 하청노동자의 비율, 정규직과 하청 및 지역민 간의 소득 격차와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후 정규직의 임금은 급속히 증가해 세간에서 귀족노동자라고 불리 정도로 개선됐지만, 상대적으로 여건이 열악한 하청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정치적인 면으로 보면 정몽준 의원의 맹주 지위가 동구에서 여전히 유효하냐 하는 것.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사주인 정몽준 의원은 1988년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에 첫 당선된 후 17대까지 동구에서만 내리 5선을 연이어 했다. 그 바통을 이어 받아 18대 총선에서는 현대중공업 간부 출신이자 정몽준 의원 사무국장 출신인 안효대 의원이 당선됐다.

하지만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의원의 지원을 받은 정천석 구청장이 진보통합당 김종훈 후보에게 가까스로 이기더니 그의 선거법 위반으로 치러진 2011년 4.27 재선거에서는 김종훈 의원이 당선됐다. 두 선거 모두 정몽준 의원의 지원 유세 속에 치러진 것이라 동구에서 정 의원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평이 나왔다. 그만큼 동구의 지역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변화에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의 증가, 하청노동자들의 차별 호소, 진보진영의 대 주민 홍보 및 진보영향력 확대 등이 바탕을 깔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이웃 북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을 내린 이후 2012년 2월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리자 동구도 덩달라 술렁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현대중공업의 하청 제도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는 입장인 반면, 안효대 의원측은 현대중공업은 파견이 아니라 외주를 주는 하청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은주 "비정규직 철폐를 1호 입법으로"

▲ 3월 11일 울산 동구 진보통합당 이은주 예비후보 사무실 모습

진보진영과 새누리당의 이견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현대차와 같은 비정규직 개념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측은, 현대중공업의 조선 작업이 현대차와 같이 컨베이어 작업은 아니지만, 배를 만드는 용접, 절단, 사상 등 하는 일이 정규직-비정규직 같으며, 과거 정규직이 하던 일을 외주주는 형태로 방식만 바뀌었을 뿐 비정규직과 같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은주 의원은 근래 몇 달간 통합진보당과 함께 동구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임금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해 5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서명에 참가했다.

이은주 예비후보의 서지원 사무국장은 11일 "서명을 받다보니 많은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더라"며 "더 강력한 대중운동으로 19대 국회의 1호 법안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법안'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박일수 열사가 분신을 한 지 8년이 지났지만 힘들고 어려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동구의 대표적 사업장인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등 조선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반이 훨씬 넘는 3만 명을 넘고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전 사회적인 문제이며, 동구의 현안이 되었고 이들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국가의 정상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며 "때문에 이은주 예비후보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제 1의 과제로 삼아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기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대량 해고되고 임금이 삭감된 이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은 것도 쟁점이다.

서지원 사무국장은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자 임금을 삭감한 후 최대 성과가 나와도 원상회복 시켜주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도 해결해야 할 현안 과제이며, 이번 선거에서 문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효대 "법적 문제 없지만... 정규직화 늘릴 것" 

▲ 3월 11일 울산 동구 일산동에 있는 안효대 새누리당 예비후보 사무실 모습

반면 안효대 의원측은 현대중공업에서 과거 일부 파견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며, 일부 작업 분야를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것이라 비정규직 개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글로벌 경제 위기 후 하청노동자의 임금삭감은 조선 물량 부족에 따른 하청업체의 수주 감소로 업체 사정에 따라 임금이 삭감된 것으로, 현대중공업이 이를 삭감하거나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안효대 예비후보의 박재관 사무국장은 "진보진영에서 공약하는 '전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과연 실현성이 있겠냐"며 "경영자와 교감하는 안효대 의원이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현장은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3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현대중공업의 경우 정규직과 하청 2분류인데도 진보진영은 무조건 비정규직이라고 몰아부친다"며 "현실적으로, 법적으로 맞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안효대 의원은 현재 하청노동자들의 점진적 정규직화를 이룰 것"이라며 "1년 이상 하청에 근무하면 현대중공업 연수원에서 교육받고 정규직화 될 수 있으며, 안 의원은 이 숫자를 1년에 1000명씩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현재도 매년 400여명의 하청노동자를 연수 후 직영화 하고 있으며, 최근 하청노동자에게도 정규직의 70% 수준인 47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김덕웅 "동구 현실은 주민들의 박탈감"

▲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덕웅 예비후보(오른쪽)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뜻을 같이하는 중구 유태일 예비후보(가운데), 남구을 허원현 예비후보(왼쪽)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과거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김덕웅 예비후보의 행보도 눈에 띈다. 그는 그동안 한나라당 당시 공천 문제 등으로 안효대 의원측과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최근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현대중공업과 안효대 의원을 공격했다.

김 예비후보는 "동구는 최대사주의 정치적 터전으로 이용되는 악순환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고, 지역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발생된 대기업의 막대한 이윤이 주민들에게 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 타파를 보수대기업 대 진보진영의 극단적 대결로만 해결하려 하다보니 갈등의 폭이 더욱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활동은 경제적 원리에 따라하고, 지역정치의 문제는 주민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보수정치세력이던, 노동, 진보정치세력이던 주민들 다수의 선택에 따라 이뤄져야한다는 정치문화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