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동구 모 영어전문학원에 붙은 프래카드. 영어교육 설명회 참석자에게 5만원 상품권을 준다고 적었지만 실상은 학원 등록자에게만 준다고 한다. ⓒ 박석철

학원은 플래카드에 "20일과 27일 설명회를 하며 참석하는 학부모에게는 5만원의 문화상품권을 증정한다"고 적었다. 

이곳을 지나던 아파트단지 학부모들이 술렁였다. '학교 영어교육이 강화된다는 데 한번 참석해 들어볼까' 하는 분위기였다.

이 아파트에서 사는 주부 황아무개(41)씨는 플래카드를 본 후 "새정부 들어 학교에서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을 한다고 하는 데, 우리 아이만 처질까 불안하다"며 "영어학원에라도 보내야하는 것 아닌가?"고 말했다.

이어 황씨는 "이 지역에 사는 또래의 상당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어려운 살림에 학원비가 추가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학원 측이 내건 플래카드 내용도 사실과 달라 빈축을 사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설명회 참석자에게 5만원 상품권을 준다고 했지만, 정작 학원 측은 "설명회 참석자 중 우리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에 한해서 상품권을 준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학부모 유인책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학원 관계자는 "매스컴에서 보듯 영어교육 중요성이 높아져 학부모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설명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데..."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며 영어 공교육 강화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다수 학부모들은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아니 오히려 학원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저소득층에까지 영어 광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 그 실례다. 울산 화정주공임대아파트 주민 대다수는 비정규직이거나 장애인, 영세민세대다. 이 아파트 거주 학부모들은 "지금도 먹고사는 문제로 빠듯한 데, 영어교육이라는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며 걱정하고 있다.

가난의 되물림을 끊기 위해선 자녀 교육을 잘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지역 분위기이기 때문. 누구못지 않게 교육열이 높다. 하지만 새 영어교육정책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사교육비 부담을 안겨 줄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학교현장 당사자인 교사들의 반응은 우려 그 자체다. 전교조 울산지부 권정오 정책실장은 새 정부의 영어정책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에서도 영어로 하는 수업이 곧 시작될 것 같은데, 교사 수급과 교사의 수업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혼란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이 안되는 이유는 교사의 질도 있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이런 수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한 반의 3분의 2 이상이 영어로 하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어 사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고 있거나 외국 연수를 다녀 온 부유층 자녀외에는 이 영어수업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울산지역 전체 등록 학원수는 2700여 개로 이중 영어전문학원은 298곳. 인수위의 영어교육 발표 이후 아직 울산지역 영어학원수가 늘어나는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영어전문학원의 수업료 인상이 불가피해 학부모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덕규 울산강남교육청 학원담당 계장은 "회화 위주 영어교육으로 바뀌면 영어전문학원의 프로그램도 교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결국 학부모에게 비용이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어전문학원들은 거의 체인 형식으로 운영되며 본사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학원으로서는 본사에 지불하는 프로그램 비용이 인건비와 더불어 지출이 큰 부분이다.

지역 전반에 영어 광풍 불어

새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교육청과 지자체 학원 등 구분이 없다. 울산시교육청은 교육감이 "'영어교육활성화 추진반' 구성을 포함한 대책을 마련해 새정부의 공교육프로젝트에 동조할 것"을 지시하자 담당부서가 대책마련에 부심하다.

여기에다 울산 남구청장은 "영어 등 외국어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공무원은 인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온라인외국어교육업체에 위탁해 전 직원이 온라인을 통해 외국어 교육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구청장 지시라며 출근 후 아침 8시 50분부터 10분간 전 직원이 과별로 영어 등 외국어 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남구청은 이같은 공무원 외국어교육의 주된 목표가 "남구청이 주관해 매년 치러지는 '국제양궁대회'에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 "공무원 영어교육도 전시행정이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울산 남구청장은 "친환경급식비 지원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라며 울산 지자체 중 유일하게 친환경 급식비 지원을 거부해 시민단체로부터 "막무가내식 밀어부치기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