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A초등학교가 개정한 학생생활규정 중 두발 복장 용모 부분

'상의의 경우 어깨선보다 폭이 좁은 민소매, 하의의 경우 지나치게 짧은 바지' '속옷이 비치는 옷''가슴 부위가 지나치게 많이 패인 옷'

울산지역 A 초등학교가 최근 개정한 학교 학교생활규정 중 금지하는 복장 항목이다. "옷차림은 항상 검소하고 단정하게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되, 다음과 같은 옷차림은 금한다"고 한 후 위와 같이 3가지 세부항목까지 만든 것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그나마 학교운영위원회의 일부 반대 의견이 있어 당초 '짧은 바지의 기준을 <무릎에서 15Cm>로 한다'는 규정을 '하의의 경우 <지나치게> 짧은 바지'로 문구를 수정했다.

이 학교는 울산시교육청이 학교생활규정 개정 지침을 내리자 지난 7월 24일 개정안을 마련해 9월 12일~17일 홈페이지를 통한 학부모 찬반투표를 실시해 통과시켰다. 이어 학교운영위원회는 19일 심의안을 확정했고, 학교측은 10월 17일까지 공고를 하고 있다. 특히 A초등학교는 오는9월  28일 학생생활규정 준수 서약식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이 인권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근 심각한 학교폭력과 아동성폭력을 예방하는 취지로 학칙을 개정한다고 하면서 이 개정안은 마치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의 옷차림, 피해자 책임으로 생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

울산교육연대 "치마길이 재고...유신시대로 돌아가나"

학부모들의 항의를 접한 울산교육연대는 21일 자료를 내고 "마치 학생들의 옷차림이 성폭행의 원인이 되는 양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는 비교육적인 규정"이라며 "포괄적인 복장규정조차 인권침해인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구체적인 세부금지항목까지 두는 것은 아이들의 판단능력을 전혀 믿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학교측은 지난 19일 학부모들에게 보낸 답변서를 통해 "학교운영위원회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학생생활규정을 마련코자 노력한 학교공동체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내용이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권을 침해할 우려가 보이고, 성폭력 발생의 원인을 학생들의 옷차림에서 찾는 데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어 좀 더 완화된 표현으로수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같은 학칙개정이 비단 A초등학교 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대동소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초등학교 학부모들에 따르면 최근 자녀들이 A초등학교와 비슷한 수정안을 담은 설문지를 집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빈발했다.

지난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개정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울산지역 교육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다"고 항의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일이다.

교육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울산교육연대는 "교과부는 울산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에서 학칙 제·개정을 추진토록 했고, 결국 우려하던 인권침해적인 학교규칙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두발의 길이와 형태를 제한하고 복장의 길이와 모양과 종류를 세세하게 규제하고 금지하면서 학생의 자기결정권은 무시되고 감시와 통제의 학교로 변해가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울산교육연대는 "중고등학교만이 아니라 심지어 초등학교로까지 확장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며 "여성의 치마길이를 재고 장발을 단속했던 유신시대로 되돌아 가자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와 행복할 권리,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받으면서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해야할 초등학생에게 두발과 복장의 금지규정은 자라나는 싹들의 생각을 가두는 것"이라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뺏고 어려서부터 자기검열에 충실해지도록 길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A 초등학교의 경우 포괄적인 복장규정조차 인권침해인데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구체적인 세부금지항목까지 뒀다"며 "이는 아이들의 판단능력을 전혀 믿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정안이 정확한 길이와 폭으로 규제하지는 않더라도 이 항목들은 아이들을 더 강하게 규제할 것"이라며 "옷 고르는 아침마다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어 영원한 마음속의 감옥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울산교육청 "학교가 알아서 할 일"

한편 울산교육연대가 최근 울산시교육청에 일선 학교의 학칙 개정관 관련해 질의한 결과 교육청은 "학교자율이며 학교구성원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교육연대는 "교육청이 이같이 핑계를 대며 나몰라라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교육청은 시급히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 제·개정된 학교규칙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는지 점검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정확하고 단호하게 재개정 지도를 함은 물론 인권친화적인 학칙이 제·개정되도록 지속적으로 지도 및 점검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울산교육청이 교과부의 지침 전달자 역할이 아닌, 울산교육자치를 실현하려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해 나갈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울산교육연대는 아울러 "최근 아동 성폭력은 돌봄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어 돌봄복지와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며 "위와 같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학생들은 인권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는커녕, 자신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생활규칙 하나 만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며 "가까운 미래, 우리사회의 주역들의 모습을 상상해야하는 문제다"고 지적했다.

박석철 기자  psc@sisaul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