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총선 다음날인 12일 울산지역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당직자 및 출마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4.11총선 패배 휴유증이 크다.

영남보수지역 세력권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힘입어 그동안 꽃을 피워오던 울산의 진보정치가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그럴만도 하다. 지난 4년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보를 벌여왔던 진보진영이건만,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와 서민층 상당수가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이다.

유권자의 외면에 충격이 컸나?

4.11 총선을 앞두고 "울산에서 진보진영이 몇 개 지역구는 차지할 것"이라는 섣부른 분석이 나왔었다.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 지난 4년간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진보진영은 친서민적 행보에 앞정섰고, 반면 새누리당은 호재로 삼을 만한 일들이 별로 없었다. 선거 끝무렵까지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울산 전체 6개 선거구 모두를 새누리당이 싹쓸이 한 데다, 그나마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던 북구마저 새누리당이 차지했으니 진보진영으로서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현대차노조원은 물론 현대차비정규직, 하청업체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동자의 텃밭 북구마저 새누리당이 차지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4년간 서민층, 비정규직과 함께 동행하며 비정규직 철폐와 각종 서민현안에 앞장섰던 진보진영이기에,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 준 유권자의 변심(?)이 못내 섭섭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 수년 간 갈라섰던 진보신당 내의 핵심 인사들이 통합진보당에 합류하며 단합된 면모를 보였고,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가 성사됐음에도 새누리당에 완배했다는 점은 진보진영의 충격을 배가 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곱씹어보면, 진보진영 패배의 배경에는 야권연대 후보 지지를 두고 민주노총 내에서 찬반이 엇갈렸던 내부 분열이 한몫을 한다. 그 분열 분위기가 서민층 일부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참여당과 합친 통합진보당의 진보정체성을 문제삼았고, 또한 통합진보당 시당 간부가 자신의 당선을 위해 노동자를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불평이 나왔다. 

통합진보당의 계파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선거가 끝난지 보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동계 내부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그 분열의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내부 분열이 진보진영 결속을 위한 고진감래로 쓰이지 못하고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는 작용을 하리라고는 누구도 선듯 예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위축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민층 위한 노력은 허사였나?

▲ 2008년 6월 11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울산시민들. 5000여명이 참가했는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거리시위를 한 최대 인파다.

울산의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은 선거 다음날인 4월 12일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조금 더 노력하라는 시민 여러분들의 채찍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이 지난 4년간 만든 재벌특권경제와 반칙과 비리의 정치에 대해 용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불거지고 있는 각종 사회현안에서 진보진영이 예전과 달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서민층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섭섭함의 반증으로 보여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비슷한 시기와 사안을 두고서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수 개월간 울산지역의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그 열정도,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현대치비정규직노조의 공장 점거 파업을 대내외에 알리며 지지를 호소했던 그 애절함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요즘 진보진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4년전이다. 2008년 4.9 총선이 끝난지 한 달 되던 5월 10일. 울산 최고 번화가인 남구 롯데백화점 광장에서는 20여개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가하는 '미국산쇠고기 수입무효화 특별법 제정'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당시 촛불 문화제를 이끌던 측은 진보진영이었다.

그날을 전후 해 울산에서는 진보진영이 주도하는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이후 시민들의 참여가 급증했고 급기야 그해 6월 11일 5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거리행진이 울산시가지에서 벌여졌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최대 인파가 거리로 나왔던 이 행진의 선두에 선 주체도 진보진영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 광우병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거짓말 행보가 2008년 당시의 상황과 결코 달라보이지 않지만, 울산지역 진보진영에서는 논평한 줄 나오지 않고 있다. 침묵으로 일관되고 있다. 선두가 없으니 시민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2010년 가을,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25일간 목숨을 건 울산1공장 점거 파업을 벌일 때, 담 하나 넘어 공장 밖에서 동반 노숙농성을 하며 전국에 이 사실을 알린 측도 진보진영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사측의 회사 출입 저지를 두고 농성을 이어갔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든다. 이들을 동조해주는 선두가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승리로 4.11 총선은 끝났다. 진보진영으로서는 자신들의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비정규직,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보수일변도 울산이 자신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는 점을 감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