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의 딸을 사랑한 것도 죄가 됩니까?" 2002년 4월 5일 대구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노무현 후보는 청중을 향해 이같이 당당하게 말했다.
4일 한 네티즌이 노사모 홈페이지에 그리 길지 않은 한 편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순식간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노무현에 대한 동정론을 불러 일으켰고, 노 대통령도 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이 글이 바로 '노풍연가(盧風戀歌)'다. 노풍연가는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국민들에게는 색깔론의 부당성을 알려줬다. 필명 박술희(kgi2000@dreamwiz.com)라는 이 누리꾼의 글은 "노무현 후보는 왜 부역자의 딸과 결혼을 하였을까?"라고 시작된다. 필자는 노풍연가에서 "노무현 후보님, 후보 연설을 할 때 유권자들에게 물어 보세요. '부역자의 딸을 사랑한 것이 죄가 됩니까?' '사랑하는 여인이 부역자의 딸인 줄 알면서도 결혼한 것이 죄가 됩니까?'하고요"라 적었다. 노 후보는 대구 경선에서 승리한 후 인사말에서 "어제 우리 장인어른 문제를 들고 나왔을때 정말 눈앞이 캄캄하데요. 근데 홈페이지를 봤는데 어떤 분이 '당당하게 맞받아쳐라' 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노풍연가의 작가 필명 박술희, ID kgi2000. 그는 울산에 사는 평범한 시민인 강귀일(43)씨였다. 그런 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봤다. 울산 남구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그는 보기좋게 낙선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며 "이번 기초의원 선거에서 일어난 기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요?"라고 말했다. 복수 출마한 같은 당 후보 중에서도 '가'번 기호 후보에게 표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정당만 보고 찍는 '묻지마 투표'의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동시선거라 유권자들이 기초의원 후보의 면면을 꼼꼼히 챙겨볼 수 없었던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선거공보가 수십명 후보의 공보 더미에 함께 묻혀 버리고 만 것도 그는 억울하단다. 돈안드는 정치풍토 조성됐는데... 그는 4년전 노풍연가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그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을 봤는 데 모두 1면에 노무현 후보의 장인 편력에 관한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노사모 홈페이지 일반게시판에 오른 길지 않은 분량의 노풍연가는 누리꾼들의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면서 단번에 베스트뷰에 올랐다. 노풍연가는 당시 인기 드라마인 '겨울연가'에서 힌트를 얻었단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강귀일씨는 MBC 시청자 소감 공모전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글재주도 있었다. 그는 "노풍연가는 평소에 알고 있던 인간 노무현의 부인에 대한 사랑, 머리보다 가슴으로 대하는 인간적인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작성됐다"고 말했다. 여성월간지는 당시 노풍연가를 두고 '메이저 신문에 대항해 이긴 최초의 사건' '여성표 100만표를 움직인 글'이라고 썼다. 노 대통령에게서 노풍연가에 대한 인사가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전화 한 통 없었다. 하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돈 안드는 정치를 할 수 있고, 유급제를 통해 보통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 출마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선거기간 중 이상 열풍이 무섭긴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4년전을 회상하며 "내 글에 용기를 얻은 노무현 후보가 '사랑한 게 죄입니까?'라고 외칠 때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희열을 맛봤다"고 말했다. |
박석철 기자 psc@sisaul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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