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15일 발표한 학교자율화추진계획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갈등과 논란 끝에 마련된 0교시 수업, 심야보충수업 등을 모두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단, 각 시도교육청 자율에 맡긴다는 것. 우열반 편성을 허용한다는 정책도 눈길을 끈다.

그런데 막상 이번 발표에 혼란스러운 건 지역의 시도교육청이다. 오랜기간 교육구성원과의 갈등과 협의, 토론 등을 통해 마련한 정책들이 하루아침에 휴지가 돼 날아갈 것을 두고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손사래를 치는 교육청도 있다고 한다.

이번 조치에 박수를 칠 특권층도 있겠지만, 국민 대다수 서민층 학부모와 학생들은 우려를 금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전 KBS2 인기 TV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외국의 젊은 여성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기억이 난다. "한국에 와서 특이하게 느낀 점"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초중고교생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고 한 것. 영국인도 있었고 프랑스, 미국, 우크라이나인도 있었다.

이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교육체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초중고교 때 열심히 뛰놀고 취미생활을 하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그들은 "한국 청소년들이 죽도록 공부하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면 정신없이 노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외국에선 대학이 평가를 엄격히 해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을 졸업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특기 적성을 찾아가면서 느긋하게 대학생이 되는 외국과는 판이하게,  정신적 신체적 성장기에 교과서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이번 자율화조치가 더해지면 어떤 상태로 성장하게 될까?

우선 교과성적이 남보다 못해 열등반이라는 이름으로 낙오돼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청소년들이 늘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어도, 이들은 영어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로 열등반생이 될 것이다. 자존심 상하고 곁눈질 당하고 자아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오랜기간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겨우 시동을 건 '특기 적성' 교육은 사라지고, 이제 국영수로 대표되는 학교수업에 매달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수업과 성적에 부담을 더욱 느끼면서, 자기가 잘하는 것이 아닌 국영수 과목에 서로 경쟁자가 돼야한다.  

박찬호 박세리에게 국영수 수업을 강요했다면 오늘날의 세계적 선수가 됐을까? 어른들이 하지말라고 야단치는 컴퓨터 게임을 잘해 프로선수가 된 20세 나이의 게임메니아.  그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대학교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이번 조치를 보면, 학생들의 건강권을 지켜주고 그들의 특기를 살려주는 공교육이 아니라 어른들 자신을 생각하는 교육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 특히 우려된다.

우리 교육계에서는, 인격이나 성품보다 서울대 많이 보낸 교장이 유능한 교장으로 인식돼 인사 등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아온 묵시적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자율화란 이름으로 학교장들은 다른 학교장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아이들에게 시켜야 할까.

이번 조치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볼 때,  '1%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경쟁사회라지만 영어 수학을 못해 낙오해 고민하고 방황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