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지역신문의 기자로 있던 2004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명의 언론인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동료였던 A기자. 그는 제보를 받고 관급공사 비리와 관련한 기사를 썼다가 고소당했다.

기사에 언급된 당사자는 기사가 나온 당일 즉시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도 신속하게 A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일사분란함을 보였다. 다행히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을 면했지만, 그와 그가 속한 신문사는 엄청난 수모를 겪어야 했다.

고소인측은 A기자가 속한 신문은 물론 또 다른 지역신문의 1면에 5단으로 명예훼손에 대한 사과문을 실어야만 소를 취하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사자는 물론 해당 신문사로서는 최악의 불명예가 아닐 수 없었다.

해당 신문사도 갑론을박을 거쳐 결국 사과문을 게재했다. A기자가 해당 기사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명의 피고소인 B국장. 지역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한 인터넷신문 주필을 맡으면서 명예훼손 사건에 휘말렸다.

B국장은 지역 교육계 고위층에 관한 기사를 다루면서 당사자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당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언론침해'라며 지역 시민단체가 그를 옹호하고 나섰고, 전교조도 그를 돕기 위해 성명을 발표하는 등 여론이 들끓었다.

검찰은 '공익을 위한 기사에 해당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공소권 없음' 판정을 내렸다. 검사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혐의가 없다는 의미다.

이같이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은 A기자가 해당 기사에 대해 명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데 반해 B국장은 취재부터 기사가 나오기까지 과정을 타당한 논리를 곁들여 제시했기 때문이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필자는 평소 관행처럼 떠돌던 지역내 '하청업체의 대기업 상납고리'의 문제점을 파헤쳐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시해 보고 싶었다.

마침 필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주방장으로 있던 A씨가 중요한 증언을 해줬다. 자신이 지역 유흥업소 영업상무로 있으면서 하청업체 사장의 부탁을 받아 대기업 간부에게 돈다발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두번의 관행도 아니었고 전달 과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정치권에서만 있던 사과박스 돈 전달이 기업에서도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접한 필자는 메가톤급 기사감으로 판단했다.

필자는 제보자와 함께 돈 박스의 길이를 자로 재며 당시 상황을 취재했다.

기사가 게재되자 이 회사 감사팀은 여러 과정을 거쳐 당사자는 물론 제보자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감사팀은 사실관계 대부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잘못된 관행을 끊는 것보다 이런 사실이 대외로 알려질 경우 회사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더 중요시했다.

이 때문에 제보자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해당 유흥업소 주인인 제보자의 사촌 여동생이 "오빠 때문에 가게 망하게 됐다"며 난리가 난 것이다.

제보자는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볼 수 있다며 기사삭제를 간곡히 요청했다. 특히 그는 "내가 증언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을 것 아니냐"고까지 말하며 절박함을 더했다.

'펜의 힘으로 대기업의 상납고리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관행을 끊어보자'던 계획은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명예훼손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최근 들어 지역 대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이권에 개입해 억대의 돈을 챙긴 혐의로 속속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평소 명예훼손 피소 위험을 무시한 과감한 언론 기사들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소한 경종은 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수 많은 기자들은 지금 이 시간 생활현장의 부조리나 모순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명예훼손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기자들의 글 표현을 위축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