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의원 ⓒ 시사서울

[시사서울닷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가 예상을 뛰어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며칠을 망설이더니 야당인 통합민주당보다 더욱 지독(?)하게 텃밭인 영남 공천에서 물갈이를 단행하며 화약고로 뛰어들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13일 오후 영남권에 대한 2차 심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은 4월 총선에 공천을 신청한 영남지역 현역의원 62명 가운데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김무성 최고위원 등 25명을 탈락시키는 ‘대형사고’를 쳤다. 김용갑 김광원 의원 등 불출마를 선언한 2명을 포함해 영남지역 현역 의원 교체율이 무려 43.5%에 이르게 된 것이다.

43.5%라는 대폭적인 현역 교체율을 보인 것은 4.9총선 과반수 의석 확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게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태껏 계파별 나눠먹기식 공천심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한나라당으로서는 ‘텃밭’이라 할 영남권에서 ‘상상, 그 이상의 상상’을 뛰어 넘는 물갈이를 통해 떨어져나가는 표심을 애써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 김무성 김재원 유기준 의원 등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 10명이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대목이다. 박 전 대표의 대응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친 박근혜계’의 유승민 허태열 서병수 의원 등은 물론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박종근 이해봉 이인기 김재원 김태환 김무성 엄호성 유기준 의원은 ‘박근혜 쪽 수족’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박 전 대표 측은 초선까지 50%가 넘게 탈락했다.

김무성 최고위원과 유기준 의원은 공천심사위의 결정에 반발,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계’ 의원들은 대응책을 모색 중이고 여기저기서 ‘개혁공천’에 대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천 후유증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친이명박계’에서는 이병석 박형준 박승환 의원이 총선 후보로 확정됐으나, 지난해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이던 5선의 박희태 의원과 권철현 이성권 의원 등 12명이 탈락했다. 공안통인 정형근 최고위원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반면 정몽준 최고위원은 공천이 확정됐다.결과적으로 보면 친이 진영은 12명, 친박 진영은 10명. 언뜻 보기엔 친이 진영의 탈락자 명단이 더 많다. 영남 지역에 상대적으로 친박 의원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내 안정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경선 패배 이후 최고위원직을 맡으며 사실상 당내 친박 인사들의 좌장 역할을 해 온 김무성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한 것은 단순히 수치로만 비교하기 힘든 ‘친박 측의 손실’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50%가 넘는 자파 의원들이 탈락한 영남권 공천 결과가 발표되자 친 박근혜계 의원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13일 저녁 공천 결과가 발표되자 쇼크 상태에 빠졌다.

탈락한 현역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있을 수 없는 일”, “기가 차고 어처구니가 없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유정복 의원의 보고를 받고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며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는 전언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특히 박근혜 경선캠프의 좌장격이었던 김 의원의 탈락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김무성이 탈락한 게 맞느냐”며 공천 결과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탈락한 의원들 상당수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어이가 없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해봉 의원은 “건국 이래 이렇게 잘못된 공천은 없었다”며 “원칙도 기준도 없고 오로지 당파만 재현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인기 의원은 “경선 때 박근혜의 선대위원장을 한 게 이렇게 큰 죄가 될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박종근 의원은 “영남권 대학살극으로 계파싸움의 결과”라고 비난했다.

유기준 의원은 당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공당이 하는 공천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사천이라는 지적이 사실임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경선에서 승리한 측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이 확정된 의원들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구 지역구에 있던 유승민 의원은 결과가 발표되자 즉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유 의원은 “황당하다”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격해지면서 친박 의원들은 공천 심사 이전부터 당 안팎에서 떠돌던 소위 ‘살생부’가 거의 맞아들어갔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은 친박계 의원들의 본격적인 행동이 ‘박 전 대표의 반응’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단 박 전 대표의 첫 반응은 더 이상의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김무성 의원까지 탈락시킨 상황을 수용할 경우, ‘친박계’의 몰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고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구제’의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방어적 자세와는 다른 모습이 필요하다. 구제가 되지 않으면 지역구 출마 포기와 선거 지원 유세 중단, 나아가 탈당 등의 강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분열로 내달릴 수 있다.

“이명박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겠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13일 발표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영남지역 현역의원 대폭 물갈이는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날 공천 발표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전 대표계 핵심 현역의원들의 ‘몰락’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박 전 대표 쪽의 타격이 훨씬 크다”면서 “중량감 있는 중진이 부족한 박 전 대표 진영에서 김무성 의원이 구심점 구실을 해왔는데, 박 전 대표는 자신의 계파의 좌장 구실을 해온 김 의원을 잃어버렸다. 김 의원의 탈락은 사실상 박 전 대표 계파의 급속한 와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김무성 의원 외에 지난 경선 때 자신의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이자 캠프의 핵심 전략가였던 김재원 의원과, 정치적 자문을 구했던 김기춘 박종근 의원을 잃어버렸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박 전 대표가 당에 있을 수 없도록 등을 떠민 것이라는 해석마저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당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 과반보다는 박 전 대표 쪽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확인되지 않는 루머마저 떠돈다.

이는 계파를 떠나 중진이나 고령 의원, 과거 논란이 됐던 경력을 지닌 의원들을 탈락시킨 점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을 재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어찌됐든 이명박 대통령 측의 당 장악 의도가 확실히 드러난 이상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 쪽과 박근혜 전 대표가 사실상 한 지붕 아래 동거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친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대학살”이라며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한 충격과 당혹 속에 빠저 있는 만큼, 최악의 경우 분당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섰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가 하루 전인 12일 “영남 공천을 두고 보겠다”고 언급해왔던 이상, 측근들을 대거 잃어버림에 따라 탈당할 가능성은 사실상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측근은“우리 당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이 됐다”면서 “친박계의 대거 탈락은 무소속 출마 러시와 함께 이들의 연대에 힘을 싣는 요소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탈당, ‘시간 문제’

일단 여의도 정가 역시 이들의 무소속연대에 힘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유기준 의원 등 친박 측 인사들은 재심 청구와 함께 무소속 출마를 사실상 예고했다. 당내에선 “영남지역에서 무소속에게 몇 석 뺏길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한나라당으로선 영남 물갈이 공천으로 그동안 다짐해온 ‘개혁 공천’의 모양새는 갖출 수 있게 됐지만,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됐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박근혜 전 대표 측 상당수 인사들이 참주인연합의 당명을 개정한 가칭 ‘미래한국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설 채비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서울 중랑갑에 공천했다 탈락한 김철기 전 당협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상당수 친박계 인사들이 신당 창당 방안도 고려했지만 기존의 군소정당을 개명해 총선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신당 창당 방안도 고려됐지만 후보등록까지 시간이 부족해 기존 군소 정당에 헤쳐 모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특히 “참주인연합은 이미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명을 개정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주인연합은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당명 개명을 신청해 이미 미래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편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 측 선대위 고문을 맡았던 서청원 전 대표는 최근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 “최소한의 기준도 없는 밀실야합, 승자독식에 모든 것을 거는 반역사적 공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이미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 놓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들이 파행과 퇴행을 얼마나 시정할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결국 나서야 한다면 주저 없이 앞장서 싸울 것”이라고 말해 이 또한 주목된다. 향후 ‘반이명박 투쟁’은 물론이고 분당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강재섭 대표는 언론과 접촉에서 “절대 누구를 밀었다고 피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했다. 다만 큰 물결이 흘러갈 때는 귀한 물건도 떠내려갈 수 있다”면서 “(탈락자를) 분류해보면 박 전 대표를 밀었던 사람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밀었던 사람이나 중립인사가 더 많다”고 해명했지만 ‘친박’계는 이미 궤멸된 상태이고, 박 전 대표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