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성들의 휴식공간이나 기분 재충전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사우나. 요즘 물가로 볼 때 4000~5000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만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도 드물다.

▲ 남성들이 휴식공간으로 즐겨찾는 대중 사우나. 이곳에서는 구두닦는 일로 손님과 종업원간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업무 중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퇴근 후, 휴일, 잠시 짬을 내서 목욕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곳, 사우나. 그렇지만 사우나 입구에서 맞닥뜨리는 구두 닦는 사람과의 눈치싸움은 모처럼의 안락한 시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이다.

2000원을 내면 구두가 반들반들해지면서 고맙다는 소리도 듣는 신사가 되지만 매번 구두닦는 일은 부담이 크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를 없게 하는 구두 닦는 사람과의 눈치싸움은 치열하다. 구두를 맡기는 순간 반가운 인사를 듣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어제 혹은 며칠 전에 구두를 닦아 다시 닦을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사우나 입구에서 애타게 구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찌해 볼 재주가 없다.

돈 2000원에 비신사가 되느냐 신사가 되느냐 판가름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구두를 맡긴다. 문제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는 경제상황인지라 그 선택이 얼마간 고통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왜 사우나는 남자들로 하여금 구두 닦는 것을 강요하게 됐을까? 왜 사우나 종업원은 구두닦는 일을 반 강요하다시피 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사우나 종업원의 임금체계와 관련이 있다.

구두 닦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남자들이 사우나를 찾으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 구두 닦는 것. 두려움마저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사우나를 이용하는 K씨. 그는 사우나에서 목욕한 후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하루 중 유일한 낙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구두 닦는 문제로 힘들다고 한다. 카운트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사우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구두를 닦고 있는 사우나 종업원과 마주치게 된다. 그뿐 아니다. 서로 눈이 마주쳐야 한다. 입구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찰나의 순간 K씨는 기싸움에서 지고 만다. 구두를 맡기지 않으면 돌아오는 싸늘한 눈총이 무서워서다. 이 눈총을 몇 번 경험해본 그로서는 아예 기싸움에서 이길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24시간 이상을 따라다니는 2000원의 아까움은 "다음엔 이겨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한다. 불경기 탓에 매일 구두를 닦는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우나 입구에서 구두를 맡기는 일이 과거에는 신사의 미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처럼 일반 남성들이 자주 사우나를 이용하고부터는 이런 에피소드가 한 둘이 아니다. 모든 남자들이 매번 구두를 닦는 일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이 사우나 종업원들이 구두 닦는 것을 묵시적으로 강요하다시피 하는 것은 자신의 임금부분을 구두 닦는데서 일정부분 메워야 하기 때문.

보통 사우나에선 몇 명의 종업원들이 청소, 때밀이, 구두 닦는 일을 분업화해서 공동 수입분배 구조로 일하고 있다. 기본 임금이 낮기 때문에 자연히 때밀이나 구두 닦는데서 수입을 올려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때밀이와 달리 구두 닦는 일은 묵시적 강요를 하기가 쉽다. 구두 닦는 이와 손님이 구두를 벗는 장소와는 눈이 마주치게끔 구조가 되어 있어 체면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남성들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한 탓이다.

구두를 벗어든 순간 "2000원을 아까워하냐"하는 심리적인 압박이 작용한다. 손님도 알고 종업원도 안다. 그래서 기싸움이다.

사우나를 자주 이용하는 남자들은 이 시간에도 외친다. "구두닦는 것, 제발 자유롭게 놔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