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씨는 이를 수긍하면서 "6개월에 500만원씩, 3차례에 걸쳐 돌려주겠다"고 했고 원고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드디어 1년여를 끌어오던 '울산 우정지하상가 전세계약금 반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울산 태화강에서 꽃과 비둘기를 돌봐 '비둘기 아저씨'로 불리던 원고는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이라며 "하지만 민사소송까지 오게된 과정과 국·공유재산법이 침해되는 현실에 대해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원 청구와 청와대 민원을 통해서라도 이 사회의 모순은 밝혀낼 것"이라며 "법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사재판에서 승소한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된 사연일까?

   

 

사시사철 갖가지 꽃이 피며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장관을 이루는 태화강변. 전국 도시 중 가장 '잘산다'고 소문난 울산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어 닥쳤고, 특히 전망 좋은 이곳 태화강변에는 건설업체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어 수십 건의 고층 건물이 현재 공사중이거나 진행중이다.

 

25년간 태화강에서 꽃과 비둘기를 돌보는 전직 공무원인 비둘기아저씨의 태화강변 거주지도 재개발 시행사가 땅을 매입하면서 파란이 일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산 태화강변의 꽃과 비둘기를 돌봐 '비둘기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이후 "비둘기 모이 창고 전세보증금을 사기·배임 당했다"며 태화강 지하상가점유주와 재개발 업체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였고, 이번 민사 소송에서 이겼다.

 

하지만 비둘기아저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행정직이던 아저씨는 25년 전 합천에서 울산으로 발령받아 이주했다. 이주한 곳은 울산의 젖줄이라는 태화강 바로 앞 주상복합 건물. 그는 이곳에다 합천에서 가져온 꽃씨와 어린나무를 보관하면서 태화강에 심기 시작했고, 이후 태화강변은 꽃밭으로 변해갔다.

 

특히 15년전부터는 비둘기까지 모여들었고, 그 후 아저씨는 모이를 주며 비둘기를 돌보게 됐다.

 

 

2002년 울산 강북교육청 과장직을 퇴직한 후에도 꽃과 비둘기 돌보는 일은 계속돼 지금은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그가 던져 주는 모이를 먹기 위해 매일 태화강을 찾고 있다.

 

하지만 비둘기아저씨가 거주하던 태화강 앞 주상복합 건물도 재개발 시행사의 매입 대상이 됐다. 시행사가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매입을 진행한 것은 2005년말 무렵.

 

"비둘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비둘기아저씨와 "꼭 매입해야 한다"는 시행사측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결국 양측은 2006년 2월경 '비둘기아저씨 거주지 옥상에 심어 놓은 나무의 이전' '집에 보관하는 비둘기 모이창고를 대체할 창고 마련' 등 옵션에 합의, 비둘기아저씨는 이곳을 떠나 인근 아파트로 이주하게 됐다.

 

양측은 태화강과 전 거주지를 연결하는 지하상가에 비둘기 모이창고를 마련하기로 했고, 이를 알아보러 관할 중구청에 갔던 시행사측 정아무개씨는 2006년 3월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와 "관할 중구청에 지하상가 임대 허락을 받았으니 지하상가 임대차 계약을 하자"고 했다고 아저씨는 밝혔다.

 

2006년 3월 2일 아저씨의 위임을 받은 시행사 정씨와 상가 점유주 김아무개씨는 2000만원에 5년간 상가를 사용한다는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했고, 아저씨는 시행사측을 통해 2000만원을 김씨에게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며칠 뒤 관할 중구청은 "이곳은 민방위대피소이므로 상가를 임대 및 매매할 수 없다"며 '임대 양도 금지' 표시판을 지하상가에 부착했고, 비둘기 모이 창고 임대를 불허했다.

 

아저씨는 "시행사 정아무개씨가 중구청에서 허락을 받았다고 해 계약을 했다"며 항의했고, 중구청은 "절대 그런일이 없다. 교육청 과장까지 한 분이 그것을 모르고 계약했냐"며 임대할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

 

이후 상가 점유주는 아저씨에게 전세금 중 500만 원만 돌려 준 뒤 나머지 1500만원은 돌려주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후 수 차례 독촉과 내용 증명을 보내도 돈을 돌려 받지 못했다.

 

화가 난 비둘기아저씨는 "상가 점유주 김아무개씨가 돈을 돌려 주지 않고, 이에 대한 내용 증명을 보내니 '칼로 죽인다'는 협박까지 했다"며 사기와 협박으로 점유주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지난해 8월 22일 검찰로부터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란 통지를 받았다.

 

문제는 점유주와 시행사측이 경찰 조사에서 "2000만원은 월세로 소멸되는 계약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 때문에 아저씨는 "처음부터 짜고 전세금을 가로채기 위한 것"이라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아저씨는 "시행사 정아무개씨가 나를 속이고 계약을 주선했다"며 그를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이마저 지난 12월 26일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란 통지서가 날아 들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둘기아저씨가 상가점유주를 고소하자 시행사측 정아무개씨는 참고인 조사에서 "중구청에 임대여부를 알아보지 않았지만, 집을 매입해야 하는 절막한 상황이라 지하상가 임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후 상가주인이 사기 등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다시 비둘기아저씨가 정씨를 배임혐의로 고소하자 그는 경찰 진술에서 "중구청으로부터 '상가 임대가 안되지만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은 모르는 일'이라고 해 아저씨에게 그대로 얘기했다"며 "첫 진술 때는 공무원에 불이익이 갈까봐 그렇게 진술했다"고 번복했다.

 

중구청과 지역주민들에 따르면, 시행사측은 재개발을 위한 부지 매입 마감시한이 임박했지만 마지막 매입 대상자로 남은 비둘기아저씨측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고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사측 정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공무원에 불이익이 갈까봐 진술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 22일 "공무원이 이 문제에 거론되면 왔다갔다 귀찮아 질 것 같아 그렇게 진술 한 것"이라며 "실제로는 공무원이 '우정 지하상가 임대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둘기아저씨에게도 안된다고 했으나 아저씨가 무리하게 추진하자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의 경찰 진술과 최근 주장이 모두 다르다.  

 

울산 중구청 담당 유아무개 계장은 "'지하상가는 대피시설이라 임대가 절대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나만 있은 것이 아니고 상급자인 과장도 있었기에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당사자들 입장 취재하니...

 

당사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시행사측 정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구의회 김아무개 의원을 찾아가 "태화강 지하상가에 비둘기 창고를 임대할 수 있는지" 협조를 구했고, 구의원은 담당 공무원을 만나게 해주면서 의견을 조율토록 했다.

 

김아무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소 아는 사람이 찾아와 이 관계를 물어 보기에 담당자에게 문의토록 주선했지만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담당자인 중구청 유아무개 계장은 22일 "구 의원의 연락을 받고 담당 과장과 함께 민원인을 만나 '이 상가는 임대가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설명했다"며 "소유주끼리 임대 양도 하는 것은 나도 모른다. 답을 못드린다"고 말했다.

 

22일 법원으로부터 전세금 반환 판결을 받아 '모두 돌려주겠다'고 한 상가 점유주 김아무개씨는 "비둘기아저씨 때문에 지하상가도 모두 폐쇄돼 인근 상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며 "나도 손해가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구청은 사건이 불거진 2006년 김씨가 소유하고 있던 8개 가량의 우정지하상가를 폐쇄시켰고, 이후 김씨는 인근에 있는 우정상가 점포를 얻어 잡화류 영업을 하고 있다.

 

 

울산 중구청에 따르면 이곳 우정지하상가는 울산시가 30년 전인 지난 1978년 민방위 대피시설로 설치했고, 몇 달 뒤 한 건설업자에게 지하시설내에 44개의 상가를 설치 운영토록 임대 허가했다.

 

하지만 이후 상급기관의 감사에 적발돼 철거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 때는 이미 여러 명의 개인에게 지하상가를 양도한 뒤였다. 상가 점유자들은 이후 관청의 철거 명령에 불복해 오면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할 관청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비둘기아저씨는 이 과정에 관할 관청의 중대한 실수가 있다고 말한다. "법으로 임대 양도를 금지해 놨는 데 어떻게 김씨와 같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상가를 점유할 수 있으냐"는 것.

 

그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밝혀야 하겠지만, 최소한 관할 중구청의 국공유재산 관리가 형편 없다는 것은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30년간 공직 경험으로 볼 때 우정지하상가는 국유재산법, 지방재정법, 공유재산법을 모두 어기고 있다"며 "이에 대한 원인소재와 책임자를 철저히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비둘기아저씨는 앞으로 크게 두 가지의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첫째는 비록 승소했지만 지하상가 임대 과정이다. 그는 "시행사측이 중구청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 계약을 했지, 임대가 안된다고 했으면 어떻게 2000만원이나 주면서 계약을 했겠느냐"며 "상가점유주와 시행사측이 짜고 전세계약금을 착복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번의 경찰에서의 진술과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시행사측, 중구청측, 비둘기아저씨측 말이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 비둘기아저씨의 주장이다. 

 

비둘기아저씨는 "사회 정의와 법질서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이라며 "25년 넘게 자비를 털어 자원봉사로 꽃과 비둘기를 돌보는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그러겠냐"고 말했다.

 

취재하자 임대 양도 팻말 사라져

 

1월 중순 기자의 취재가 있자 수십 년간 이곳 우정지하상가 입구 양쪽과, 2006년 당시 문제의 모이창고용 상가에 부착돼 있던 '지하상가 임대 양도 금지' 팻말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관할 중구청은 "이곳이 민방위대피시설이므로 지하상가의 임대나 양도를 할 수 없다'는 팻말을 지하도 양쪽에 부착해 놨었다.

 

이에 대해 중구청 담당자는 "청소를 하다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다.